寻·古迹岁月背景图
찾기: 역사 유적 세월의 변화를 겪어온 고적과 유적은 도시의 뿌리이자 혼이다. 이들은 긴 세월 동안 항저우 역사의 수많은 '빛나는 순간'들을 목격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문화의 맥락을 이어왔다. 그 사이를 걷는 것은 마치 시간의 전설을 걷는 것과 같다.
  • 오월(吴越) 전설

    항저우 문사 연구 전문가 쉬웨펑 선생을 따라 항저우만의 오월 전설을 탐방한다.

  • 1.청산광장

    첫 번째로 청산광장에 도착하면, 광장 맞은편의 산맥이 바로 "주나라의 승적, 월나라의 명산"이라 불리는 월왕성산이다. 춘추시대에 오나라와 월나라가 다투던 시기, 샹후 청산 일대는 오월 패권 다툼의 고대 전장이었다. 이곳에는 현재 중국 내에서 가장 잘 보존된 춘추 말기의 고성벽 유적이 있어,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의 여러 차례 대결을 증명하고 있다.

    샤오산구 샹후 국가관광휴양구 월왕로
  • 2. 우산

    샹후에서 우산으로 와서 계속해서 오월의 역사를 추적한다. 당시 구천이 부차에게 패배한 후 5천의 잔병만을 이끌고 회계(현재의 샤오싱)로 물러났다. 그래서 첸탕강 북쪽의 많은 작은 산들이 오나라의 경계산이 되어 우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제는 춘추시대의 풍운이 멀어지고, 우산은 항저우 사람들이 발걸음을 옮겨 한 바퀴 산책하기 좋은 장소가 되었다.

    3. 우공사

    우산에서는 춘추 말기 오나라 대부 우자서를 모시는 우공묘를 만날 수 있는데, 그는 백성들에 의해 '조신(潮神)'으로 받들어졌다. 우공묘는 4개의 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마문을 지나면 어향전, 충청전, 조신전이 있다. 묘 안의 조신 향화를 느낀 후 묘 밖의 다정과 다실에서 잠시 앉아 있으면 또 다른 운치가 있다.

    4.항저우시 방지관

    마지막 코스인 방지관에서는 이 '살아있는' 항저우 백과사전을 펼쳐보며 항저우의 오월 풍화에 대한 총정리를 한다. 오월 패권 다툼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월절서》부터 "송 임안 삼지"와 청대의 《오산지》《오산우공묘지》에 이르기까지, 항저우의 오월 역사의 맥락이 분명히 보인다.

    상청구 왕장로 266호
  • 상청구 우산 경구
    상청구 우공산 1호
  • ·지식을 늘리세요·

    저강 박물관에는 전국 시대 월국 주지 여시왕의 검이 있습니다. 이 검의 주인은 월왕 구감의 아들 여시입니다. 현재 비교적 잘 보존된 월국의 청동 검입니다.

  • 황성 탐방.

    1·화녕문

    북궁문과 화녕문에서 시작하여 남송 황성의 중심축선을 걷는다. 현재 남아있는 어도 유적을 바라보며 남송 관리들이 이곳을 통해 입궁하여 조회에 참석했던 것과, 당시 문 밖의 번화했던 시장을 상상해본다. "아침이면 진주와 옥, 진귀한 보물과 제철 과일, 해산물, 야생 동물의 고기, 기이한 도구 등 천하에 없는 것들이 모두 이곳에 모였다."

    상청구 송성로 일대
    송나라의 운치 1

    저장성 문물고고연구소 연구관인 정자려 선생과 함께 봉황산 속에 숨겨진 황성 유적을 탐방한다.

  • 2·봉황산기로

    생활의 기운이 가득한 봉황산기로로 접어드는데, 이 길은 남쪽으로 자주만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만송령로까지 이어진다. 이 작은 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발밑에 묻혀있는 전각 유적과 눈앞의 생생한 삶의 모습을 보면, 옛 황성의 한 구석이 이제는 오래된 항저우의 시정 추억이 되어있다.

    상청구 봉황산기로

    3·노호동 요지

    봉황산기로를 다 걸은 후 남송 관요 유적을 찾아간다. 송나라 왕실이 남쪽으로 옮긴 후 항저우에 수내사와 교단하 두 곳의 관요를 설치했는데, 노호동 요지는 바로 원래의 수내사 관요로, 남송 황성 유적에서 100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고목이 우거진 산간 평지에서 용요, 작업장, 진흙 침전지와 24개의 도자기 파편 퇴적구 등의 유적이 출토되었다.

    상청구 봉황산

    4·성과사 유적

    요지를 떠나 팔반령을 거쳐 봉황산에 올라 산림 깊숙이 숨겨진 고찰 성과사를 찾는다. 이곳은 남송의 황실 사원으로, 당대에 창건되어 여러 차례 훼손과 재건을 거쳤다. 유적지 일대에는 서방삼성 잔상, 송고충의 "충실" 제각 등 여러 문물 고적이 조용히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상청구 봉황산

    5·월암

    성과사 근처의 월암은 남송 시기에 황실 어원으로 편입되었다. 매년 중추절 보름달이 뜨면, 맑은 달빛이 월암의 둥근 구멍을 통과하여 암벽 꼭대기에서 또 하나의 달로 환화되는데, 이는 당시 평호추월, 삼담인월과 함께 항저우의 3대 달구경 명소로 꼽혔다. 현재도 암벽에는 "고대광명", "광영중천", "무영상", "수련석" 등 많은 제영이 새겨져 있다.

    상청구 봉황산
  • ·전문가의 견해·

    "진정으로 사람들에게 역사적 감흥을 주는 전승은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으며, 체험할 수 있고,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정자려

  • 두 송나라를 방문하다

    1·고청파문 옛터

    남송 시대 고청파문의 구체적인 위치는 바로 남산로 청파로 교차로에 있다. 이는 남송의 서성문 중 하나로, 역사적으로 문이 남산과 통하여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땔감을 이 문을 통해 운반했기에 "청파문 밖 땔감 짐꾼"이라는 민요가 있다.

    남산로
    송나라의 운치 2

    지방문화 연구 전문가 조효파 선생의 안내로 도시에 흩어져 있는 두 송나라의 시간을 걸으며 읽어본다.

  • 2·송취경원

    고청파문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그곳에는 호수를 따라 지어진 남송 황실 정원인 취경원이 있었다. 정원 안에는 정자와 누각이 즐비하고 버드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어 유랑항, 유랑교 등이 있었는데, 이는 "유랑문앵" 경관의 전신이다.

    남산로

    ·보충 지식·

    취경원에는 일화가 많은데, 예를 들어 당시 이 정원을 확장하기 위해 송효종이 아홉 개의 사원을 철거했는데, 그중에는 당시 호수 중앙에 지어진 "수심보녕사"도 있었다.

    3·학사교

    이 다리 또한 취경원의 한 경관이었으며, 현재 류앵빈관 남쪽 문 밖에 위치해 있고 서호와 인접해 있어 잔잔한 학사항 수역을 차지하고 있다. "학사항의 복사꽃, 남병산의 소나무 빛깔, 소문 앞의 버드나무"라고 명나라 시인이 이곳의 호수 풍경을 묘사한 바 있다.

    남산로

    4·주돈이사 옛터

    학사교를 지나 호수 바람을 맞으며 "팔호정사"에 도착하는데, 이곳은 "주공사당" 옛터로, "위로는 공자와 맹자를 이어받고 아래로는 정이와 주희를 열었던" 송대 이학의 선구자 주돈이를 기념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송나라 왕실이 남쪽으로 옮길 때, 그를 서자호 호반으로 "모셔왔다".

    남산로

    5·장교 원터

    "단교는 끊어지지 않았고, 장교는 길지 않다"는 말에 나오는 장교가 바로 팔호정사 근처에 있으며, 길이가 약 5미터에 불과하다. 장교는 원래 길었으나, 이 일대의 산수와 호수면의 변화로 인해 길었던 것이 짧아지게 되었다.

    남산로

    6·전호문 옛터

    마지막 정거장으로 만송령로 교차로에 도착한다. 당시의 전호문은 갈림길의 동남쪽 모퉁이에 위치해 있었으며, 서호 동안의 가장 남쪽에 있던 성문이자 당시 임안성 내의 번화한 상권이었다.

    남산로와 만송령로 교차로 부근
  • ·전문가의 견해·

    "남송에서 오늘날까지 800여 년이 지났지만, 도시의 구조는 변하지 않았고, 방향도 변하지 않았으며, 상청구와 하청구(원 하청구)의 구분된 구역도 전체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조효파

  • 임안의 모습

    송나라의 운치 3

    송대 유적을 실마리로 현대 항저우에 숨겨진 임안의 기억을 발견한다.

  • 1·남송 덕수궁 유적 박물관

    덕수궁에서 시작하여 임안성의 번화했던 모습을 엿본다. 이곳은 남송 시대 고종과 효종이 선위한 후 생활하던 곳으로, 당시 "북내" 또는 "북궁"이라 불렸다. 원래의 터에 정성스럽게 복원된 송대 궁전과 황실 정원은 지하 유적 보호, 문화 전시와 함께 남송의 역사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매개체를 이룬다.

    상청구 망강로
    86521875
    09:30~17:00("남송덕수궁유적박물관" 공식 계정을 통해 사전 예약한다.)
  • 2·태묘 유적

    세월의 맛이 쌓인 중산남로를 지나 넓은 태묘 유적 광장에 도착한다. 이곳은 남송 황실의 종묘로, 남송 소흥 4년에 처음 건립되었으며, 큰 제사가 있을 때마다 황제가 백관을 이끌고 예를 올렸다. 현재 남아있는 유적은 주로 동쪽 담장, 동문터와 대형 건축 기단이 있다.

    3·남송유적전시관

    계속해서 중산남로를 따라 내려가면 이 소박한 전시관을 볼 수 있다. 이곳이 위치한 엄관항은 남송 시대 임안성의 핵심 지역으로, 관내에는 남송 시기의 어가, 전터, 담장, 하천 등이 원형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특히 잘 보존된 한 구간의 남송 어가 유적은 남송 임안성의 중심축을 확정하여, 임안성의 구체적인 구조를 사람들 앞에 선명하게 보여준다.

    4·팔괘전 유적공원

    옥황산 아래의 팔괘전이 종점으로, 눈앞에는 아름다운 전원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은 남송 황실의 적전으로, 농경문화와 남송 황실의 적전 예의 문화를 보여준다. 송 고종 소흥 16년(1146년) 조구가 팔괘전에서 성대한 친경 의식을 거행했다. 현재 팔괘전은 다시 민간에 귀속되어 사계절 다른 농작물을 심어 다양한 색채를 보여주는데, 봄날 유채꽃이 만발할 때가 가장 아름답다.

  • 상청구 태묘항
    상청구 중산남로
    09:00~16:30(월요일 휴관한다)
    상청구 남복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