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주(杭州) 역사 풍모 구역 | 삼돈오리당(三墩五裏塘)

출시 날짜:2025-04-03 17:28:46

   삼돈진(三墩鎮)은 고대에 난리(蘭裏)라고 불렸던 역사 깊은 수향(水鄕) 고읍(古邑)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사상가 순자(荀子)가 이곳에서 난초를 심었다는 전설이 있어, 삼돈(三墩)은 난리라는 별칭을 얻었다. 

   삼돈진의 중심 지역은 문성돈(文星墩), 등채돈(燈彩墩), 수월돈(水月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 가장 넓은 등채돈은 고읍의 상업 중심지로, 현재도 묘전가(廟前街), 묘서가(廟西街), 진가교남가북가(陳家橋南街北街) 등이 남아 있다.

   등채돈은 관선(官船)이 반드시 지나가는 곳이었기 때문에 시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 삼돈의 상업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남송(南宋) 이전부터 삼돈은 항주 성외(城外)의 중요한 상업 항구로 번영했다.

   항일(抗日) 시기에는 절서(浙西) 지역의 사람들이 여러 곳에서 저항을 펼쳤고, 일본군은 삼돈을 넘지 못해 이곳은 평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인원 이동과 물자 교류로 삼돈은 예전에 없이 크게 번영을 누리며 “소상해(小上海)”로 불렸다. 당시 오리당(五裏塘) 양안에는 상인들이 몰려와 곡식, 술, 비단, 가죽, 전당포 등 다양한 상업이 모여 있었다.

   삼돈오리당은 자연과 인공 환경이 조화를 이루어 형성된 독특한 강둑 체계로, 현존하는 강둑은 완전하며, 상업 유적이 풍부하며, 원래의 마을 구조가 잘 보존되어 있어 전형적인 종합형 수향 고읍 역사 풍모 구역이다.

   오리당 양안에는 청(清)나라와 민국(民國) 시기의 건축물이 많으며, 옛집, 옛 다리, 고하부(古河埠) 등 향수(鄉愁)를 자아내는 옛 건축물들이 집중적으로 남아 있어 전통적인 구조와 역사적 풍모를 비교적 완전하고 진실하게 보여주고 있다.